The Men who make their own way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 -그 첫번째 인물 ‘이재현’

TACFIT Team Leader
CST Instuctor
CST Kettlebell specialist
STOTT Pilates Instructor
FMS Instructor

전통무예 박양박수, 박양서각 지도자
전통 상무놀이(까기와 잽이) 지도자
전통 정형도수치료 하외술 지도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물리치료 전공
무브먼트 스페셜리스트를 꿈꾸는자

내 어린시절의 기억이라곤 학교,학원,학교,학원…가끔씩 친구들과 하는 축구.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학창시절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집단은 그룹으로 따로 묶고 학원도 그런 그룹 아이들의 어머님들끼리 치맛바람 날리면서 다 같이 몰려 다니고 하는 그런 생활의 연속. 일상의 모든 패턴이 틀에 짠듯 똑같았고 당연히 문과친구들은 나중에 법대나 경영대를 이과는 의대 치대를 가야된다는 생각. 누구 하나 그런 생활과 생각에 의문을 품지 않았고, 그런 생활속에서 자기철학이란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오로지 국영수만 강조했지, 체험학습같은 것도 없었고 ‘나’라는 존재, 자아를 형성할만한 기회는 없었다. 내가 아는 세상 그것이 이 세상의 전부인 줄만 알던 시기였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재수학원을 다니고, 수능을 쳐서 나름 좋은 대학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경영학과를 들어갔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대학교에서 난생 처음으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때 나의 철학을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두가지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태껸 동아리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야학 영어강학(강의라 하지 않고 강학이라 불렀음)이었다.

난 어릴 때부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유복하게 자랐고 내 주위사람들도 모두 그랬다. 그런데 야학에서 강학을 시작하면서 만나게 된 분들은 달랐다. 정말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배움의 기회를 놓치신 40대 이상의 연세 드신 분들이 자식들 다 가르치시고 정말 공부에 한이 맺혀 공부하러 오신 분들,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는 그런 분들이었다. 야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내 평생 처음으로 무엇인가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의 내 삶에서 열정같은 건 없었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했고 그렇게 좋은 학교만 가면 성공한다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고 그렇게 시키는대로만 했다. 그런데 야학의 학생들은 말 그대로 공부에 열정이 있었다. 좋은 대학가서 직업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공부가 아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진심으로 공부하기를 원해서 온 사람들.

내가 대학을 올때까지 십수년을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하면서도 단 한번도 내가 원해서 공부를 한 적이 없었는데 야학에서 그분들을 가르치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매일 밤마다 “아…오늘 또 야자해야해?” 매일 아침 “아…오늘 또 학교가야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남이 시키는 것을 이유도 모르고 억지로 하니까 늘 부정적,소극적으로 공부했었는데 그분들은 공부에 열정이 있고 자기가 원해서 하니까 늘 적극적,긍정적이었다.
“선생님 저 잘할 수 있죠?”라는 질문에 “네 잘하실 수 있습니다. 저번보다 성적도 많이 올랐는데요. 열심히 잘하시고 계세요.”라는 나의 대답에 세상을 다 가진듯 기뻐하시는 모습에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었다. 난 그때까지 그런 감정을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과연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 답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국.영.수 빼고는 제대로 경험한 것이 없었기에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수밖에…그래서 닥치는대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클래식기타를 배우고, 중국무술도 배우고, 학교에서도 경영학 전공이었지만 다른 학과 수업도 많이 들었다. 특히 인문학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타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철학,사회학,체육학과 수업까지…여러 다양한 주제들로 경험의 가지를 뻗어나가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의 브레인스토밍에 들어갔다. 그렇게 경험을 하다보니 어떤 건 재미없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내가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아닌것도 있고 그렇게 3,4학년이 되면서 이제는 마구마구 뻗어나간 경험의 가지들을 하나씩 하나씩 가지치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가지치기를 통해 발견한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무술이었다. 그런데 태껸을 하면서 초보자였기에 부상을 많이 당하였고 치료를 위해 한의원과 병원을 다녔지만 치료가 잘안되었고 치료가 잘안되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고 ‘왜 이리 안낫지?’라는 의문이 들면서 내 스스로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인체, 즉 몸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생긴 관심으로 하외술을 전수받게되고 좀 더 전문적으로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의전문대학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침이나 탕약 이런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후 더 자세히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내가 진짜 관심이 있는 것은 한의학이 아니라 재활 그중에서도 스포츠재활과 근골격계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중에서도 손으로 하는 치료, 도수치료에 가장 끌려서 깊이 조사한 결과 외국에서는 물리치료사들이 이 부분에서 두곽을 나타내는 것을 보았고 결국 물리치료학과를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정리되면서 이후 군대문제해결을 위해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하고 제대후 같은 대학 물리치료학과 3학년으로 학사편입했다.

물리치료사의 길을 선택했는데 트레이닝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처음에는 피지컬 트레이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체구가 작은편이 아니었기에 무술을 수련함에 있어서도 힘이 부족해서 힘들었던 경험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크게 필요성을 못느꼈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에 변화를 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군대 복무 시절 삼보 세계챔피언 출신의 러시아경찰특공대 삼보코치와 수련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한 44살 아저씨처럼 보이는 그 사람에게 한손으로 내 몸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완전히 제압 당했다. 처음 느껴본 완벽한 힘의 압도를 느끼고 많이 좌절했었고, 선체력 후기술이란 말이 헛말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육체적 트레이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트레이닝과 재활이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트레이닝에 대해 파고들면서 스캇 소넌의 CST/TacFit이라는 단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대 세계적인 재활의 추세는 재활+트레이닝, physio therapist의 앞글자와 트레이닝이 합쳐진 physio training것도 알게 되었다. 재활과 트레이닝이 다른게 아니라 결국 하나라는 것, 둘 다 신체에 일정한 강도의 스트레스를 주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해지고,성장한다는 개념에서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그냥 관심과 흥미가 있는 정도였다면 이후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진짜 이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의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새로운 길을 선택하면서 부딪친 반대극복은?

그 당시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난 외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말 잘듣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던 내가 잘 다니던 경영학과를 그만두고 물리치료학과로 편입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대는 오죽했겠는가. 아버지께서 설득도 시키려고 하시고,화도 내시고,온갖 방법으로 회유도 하시고 그래도 내 의지가 꺽이지 않자 결국 포기하시고 대신 모든 경제적 지원이 완전히 끊겼다. 물론 자기 힘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많은 분들이 있지만 늘 있다가 갑자기 없어지니까 처음에는 정말 난감하더라. 군대를 장교로 선택한 이유도 학비를 벌기 위한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이 길을 포기하지 못한 것은 경영학과 공부를 할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희열을 무술,재활공부할 때는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미친 것만 같았다. 그렇게도 공부를 싫어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공부가 재밌다고 느끼다니 내 자신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공부가 재밌다는 것을 느꼈고 이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걸 안하면 나중에 정말 후회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선택에 확신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유들 중 하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만났던 여러 선배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은행,증권,대기업 등 소위 잘나간다는 곳에 취업해서 후배들의 부러움을 받는 경영학과 졸업선배들을 여럿 만났었는데 그때 그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이 거하게 취하면 마음 속 솔직한 얘기들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모두가 불평,불만이었다. 힘들어 죽겠다. 짜증나서 미치겠다. 때려치고 싶다. 충격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꿈을 접고 살면 나도 나중에 저런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꼭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군대생활 장교를 하면서 난 절대적으로 그런 정형화된 생활에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 하루하루가 희열이라곤 전혀 없었다.매일 내가 이러고 살아야하나 하는 인생에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그 군생활로 인해 내 결정이 더 확고해졌다.

그렇게 내가 편입을 결정한 후 주위 사람들 특히 동기들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말문이 막혀서 아무말도 못하고 충격을 받은듯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나를 미친놈 보듯 했다.그 누구도 이해해주거나 응원해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때는 정말 외로움을 많이 느꼈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이 참 고맙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로 인해서 내 결정에 대해 정말 수천번을 더 고민했기 때문이다. 매일 밤 종이에 로드맵을 그렸고 군대에서는 해군일지에 매일매일 하루 한장씩 썼다. 앞으로 이길을 선택해서 내가 거지가 되거나 흔히 말하는 기능공같은 물리치료사의 삶을 살더라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난 이렇게 해서 이런 식으로 나가서 이런 길로 가겠다 등등… 스스로 매일 자문했다. 정말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하지만 매번 결론은 똑같았다. 그럴지언정 이 길을 선택하겠노라고. 결국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고 이렇게 실행했다.

‘Decision’ ‘결정’에 대한 생각?

우리의 인생은 매일 매 순간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이전에는 두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99%와 1%로 나뉘는 확실한 경우에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당시 주위 선배나,멘토들에게 많이 물어봤는데 어떤 일의 선택이란 것이 그렇게 확실하게 답이 보이는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결정은 항상 미세한 차이에서 나온다. 이건 보수는 좋은데 여가시간이 적고 저건 보수는 적은데 내 여가시간이 많다. 항상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다. 절대적으로 좋고 절대적으로 나쁘기만한 그렇게 쉬운 선택은 없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딜레마는 그런 어려운 선택일지언정 우리는 반드시 그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그 차이가 미세하더라도 어차피 좋고 나쁨의 차이는 있을 것이기에 자기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1%라도 더 원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렇게 선택한 것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으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것을 결정하고 실행하기 전에 생각만 너무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얘기를 후배들에게도 많이 해줬는데 그때마다 나오는 얘기가 그렇게 해서 실패하면 어떡할거냐 만약에 실패하면 그래서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이면 어쩔거냐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이다.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고 거기에는 분명히 실패할 가능성도 있지만 난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가는 51%에 내 믿음을 건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그토록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희생된 기회비용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느 선택을 하건 그 선택으로 인해 희생되는 기회비용은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자신 스스로가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 결론은 1%라도 더 내 마음이 이끄는 곳에 승부를 걸겠다는 것. 스승님께서 말씀해주신 이 가르침 이후 난 내 인생의 모든 선택에 있어 그렇게 결정했고 그 이후 내가 내린 그 어떠한 결정에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남의 이목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내가 이런 결정을 하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나에게 진로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친구,후배들이 많았다. 진로결정에 있어 고민하는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았다. 마음은 이미 A라는 어떤 결정을 하기를 원하나, 남의 이목과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B라는 선택을 포기하지 못한다.

즉 A:자기가 좋아하는 것 Vs B:안정적인 것의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결국 B를 포기하지 못하고 선택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B를 선택한 사람들을 지금껏 많이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였다. 반대로 지금껏 만났던 A를 선택한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후회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건 정말 놀랍고도 중요한 결과다.

이때 B를 선택한 사람들은 나도 사실 A를 원했었다,경제적인 문제 때문에…등등 여러 변명을 댄다. 물론 그걸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난 이말을 꼭 해주고 싶다. 지금 이 시대에 더이상 안정적인 직업은 없다는 것이 나의 아주 현실적인 논리이다. 금융계,대기업에 그렇게 힘들게 입사해도 거기서 또 무한경쟁이다. 경쟁에서 낙오되면 가차없이 잘려 나간다.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이런 무한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나는 이런 실증적인 논리로 내 길을 선택한 것이다. 당신이 안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자체에 의심을 가져라. 세상의 흐름은 예측할 수 없다. 안정적이다, 철밥통이라고 하는 그런 것들이 언제 어떻게 뒤바뀔지 모른다. 무엇을 근거로 그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나의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A,B라는 선택안에서 안정적이라는 것은 그저 당신의 생각일 뿐 사실 둘 다 안정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당신의 선택은? 아주 간단하다. 이제 결정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안좋아하는 것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실례로 내 친구 중에 민사고를 나온 친구가 있다. 공부를 아주 잘했고 수능성적에 따라 카이스트 전기공학과를 갔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학교 수업진도 따라가고 과제하는 것만 해도 너무 벅차고 힘들어 미칠 지경인데 같은 과에 어떤 친구들은 수업과제는 물론이고 자기 개인 공부도 하고 또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새벽 3,4시까지 잠도 안자며 연구에 매진하는 친구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카이스트에는 진심으로 공학이나 전기 기계 이런 것을 좋아하고 관심있어 온 학생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전공에 관심이 있고 열정이 있기에 그 친구 자신은 도저히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한다면서, 진정 열정이 있고 무슨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니 당연히 그것에 열정이 있을 것이고 열정이 있으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미가 있어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이렇게 열심히 하니 당연히 경쟁력이 높아지고 이렇게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

나는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그 바탕에 있어서는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저 망상으로 끝내지 않고 반드시 실현되게끔 하고싶은 사람이란 말이다. 내가 진로를 선택할 때 주위에서는 나를 아주 감성적인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는데 위의 내 논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 내가 더 현실적인 사람이다.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체 게바라의 말을 항상 좋아했다. 내가 원하는 바를 현실에 맞춰서 반드시 이루고 싶었기에 이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해서 나온 결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정에 앞서 생각하는 그런 전제를 뒤집었기에 가능한 결론이다.

내 인생의 격언이 있다면?

인생무상.
난 불교신자다. 인생무상이 내 인생의 모토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절대 허무주의가 아니다. 인생이 무상하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내 삶에 열정이 있고 더 애착이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루고 명예,부를 쌓는다 해도 결국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결국 누군가 먼저 죽을 것이고 그렇게 모두가 헤어지고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죽게 될 것이다.

난 원래 굉장히 욕심이 많고 집착이 강하고 누구를 이기려고 하는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 욕망의 끝을 봤을 때 너무 허무했다. 결국 우리가 아둥바둥 거리며 사는 것이 뭔가를 이기고 성취하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이 너무 허무하더란 말이다. 왜냐하면 그게 영원히 유지가 될 수 없으니까. 내가 엄청난 근력과 젊은 피부 이런 모든 기능을 유지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알다시피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허무하다. 모든 것에 욕심을 부리고 집착만 한다면, 그저 이기고 성취하는 것에만 매달리면 결국 그 끝은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무술과 재활을 좋아하고 선택한 이유도 무술은 죽음과 관련이 있고 재활은 사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죽고사는 문제. 즉 생사관에 대해 나 스스로 깨어있도록 해주는 것이 무술과 재활이었다. 예전 일본 사무라이들은 아침마다 진검을 꺼내어 그것을 바라보면서 명상을 하는데, 그렇게 매일 아침을 ‘내가 오늘 이 칼과 함께 죽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같이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정말로 오늘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면? 그렇게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면 하루를 어떻게 살겠는가? 자식, 부모, 친구,아내가 뭔가 조금 마음에 안드는 행동을 했다고 불같이 화를 내고 상처를 주겠는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소중히 여기며 용서할 것이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재활을 통해서는 내가 물리치료를 하면서 장애아동, 중풍,뇌졸중 등으로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라고 예외이겠는가 나도 언제라도 순간의 사고로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이를 통해 매일 매일을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라는 질문 즉 생사관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그런 인식 속에서의 인생무상, 즉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가 내 인생무상의 핵심이다. 그래서 그것을 늘 인지하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보수적,일반화 문화에 대한 생각?

정말 쉬운 대답이면서도 어려운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물리치료 실습 생활을 하면서 이곳이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느꼈다. 같이 공부하는 다른 동기들로부터 “넌 물리치료사 안할 거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물리치료사란 개념은 반드시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일해야 되고 이런곳에서 저런 것을 해야된다고 딱 정해져있다. 물리치료사는 이걸 해야된다. 의사는 이것을, 트레이너는 이걸 해야된다. 그래서 트레이너가 조금이라도 다른 짓을 하면 너 왜 남의 영역을 침범하냐고 공격하고 물리치료사가 트레이너를 하면 첫 질문이 “너 체대 나왔어?”이다. 그럼 영문학과 나오면 모두 다 영어강사하고 영어교수만 해야 하는가?

사람들의 너무나도 단순하고 보수적이고 획일화된 생각에 내가 오히려 더 놀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지 않은가? 선배들이 걸어간 그 발자국, 이미 딱 짜여진 그 길 속으로만 걸어가야만 한다는 생각. 외국에서는 전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자신만의 창의적인 길을 가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시여기는데 우리나라에선 정해진 길을 조금만 이탈하면 이상한 사람, 미친 사람, 배신자 취급 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면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외국의 사이트,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하여 다양한 정보와 여러 인물들을 접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스캇 소넨, 알베르토 갈라찌, 이도 포탈 같은 사람들을 알게되었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용기를 낸 것이지 나도 만약 그런 간접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그냥 한국사회에만 갇혀서 내가 듣고 보는 것이 세상의 다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모든 정보가 오픈되어 있다.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노력하면 다른 창조적인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분야와 관계없이 요리든 문학이든 춤이든… 다 나온다. 페이스북, 블로그, 트윗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다 올려준다. 그런 것을 찬찬히 보면서 ‘아 이런식으로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사실 세계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의 주체자가 누구인가? 내 인생의 주체자는 나인데 왜 남의 눈속에 자기인생을 허비하려 하는가?
인도의 유명한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의 말이 있다. ‘스스로 충만한 자 남의 눈속에 인정받길 원하지 않는다.’ 남의 눈속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실은 자기 스스로 열등감이 있거나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자기가 충만하면 남에게 영향받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가 확신이 없으니 남이 너 잘한다 그러면 ‘아 내가 잘하나?’하고, 여러명이 너 잘한다 그러면 ‘아 내가 잘하나보구나’라며 남의 이목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상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말 자기 삶에 만족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누구나 분명히 자기가 좋아하는게 있다. 좋아하는 것과 안정적인 것이 따로 있다라는 잘못된 전제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니 삶이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당신의 길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너무 두려워만 하지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나는 위인전을 많이 본다. 남이 사는 모습을 많이 보는게 좋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성공한 사람들의 삶, 여기에서 성공은 꼭 재력 명예의 성공을 말하는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성공은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책을 통해 발견한 이런 이들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가 자신의 성공비결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남들은 내가 성공했다고 하는데 난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이다’라는 그얘기가 꼭 하더란 말이다. 그들은 커리어의 선택에 있어 생각의 프로세스가 달랐다. 명예 돈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따라 자기가 할 것을 선택한게 아니라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먼저 찾았고 그것을 선택하고 그 길을 열심히 걷다보니 돈도 따라오고 사람도 따르고 명예도 따랐을 뿐이라는 것. 난 그렇게 분석했다.

배움이란?

나는 사실 굉장히 거만한 사람이었다.모범생 증후군이라고 들어봤는가? 성적이 좋아서 어릴 때부터 칭찬을 받았고 그래서 난 내가 아주 잘난 줄 알았다. 그 성향으로 인해 대학을 다닐 때 나의 여러 관심분야에서 내가 가르침을 받는 선생님들이 무조건 최고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배우는 것들이 최고라고 여겼다. 아주 유치하게도 말이다. 동물의 왕국에 사자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남자,수컷에게는 누구나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이 본능적으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내가 하는 것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고 권위욕을 가지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그래서 설령 내가 하는 것이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고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돈을 주고 사건, 거짓말을 하건 어떻게든 내가 하는 것이 최고여야만 한다는 생각. 나도 그런 욕망에서 예외일 순 없었다.
그런데 결국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진정 열정을 가지게 되면 다르다는 것이었다. 열정이 있으니 당연히 다른 뛰어난 사람들이 하는 걸 보게 되고 바보가 아닌 이상 진정 좋은 것은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고 나니 세상에 너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너무나도 좋은게 많았다. 예전에는 그저 단순히 내가 최고이고 싶다라는 심정적인 욕심만 넘쳤다면, 열정이 생기고 나니 이제는 이것을 정말 진심으로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니 안배울 수가 없었다. 내가 겸손해서 배우는게 아니라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은 너무 많다는 걸 알게되니까 쓸데없는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잘난 사람에게 배우면 내가 더 발전하는 걸 느끼는데 그것을 거부할 수 없게된다 . 진짜 인정하기에 그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배움에 대해 주저하는 사람은 열정이 없거나 심정적인 욕망만 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존심 내세우며 물불을 가리겠는가? 뭐든지 다하지 않을까?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에 대해서?

열정적인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 꼭 모든 사람이 그런 삶을 살아야만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열정이 넘친다는 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집착이 강하다는 것이고 이것은 사실 무엇인가에 미쳐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거대한 것을 해야만이 그것이 훌륭한 삶이고 어떤 것에 미쳐서 열정적으로 사는 삶만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저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게 있었을 뿐이고 그래서 그 좋아하는 것에 미쳐 있는 사람일 뿐이다. 앞에서 한 모든 얘기들은 나처럼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얘기일 뿐이다. 드문 케이스이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그 무엇을 해도 감사한 사람들이 있다. 모든게 감사하고 어떤 일을 해도 감사한 사람, 매사에 항상 감사한 사람들 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만약 당신이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 꼭 미쳐서 날뛰어야지만 멋진 삶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난 그렇게 생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느 부류의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감사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아닌 자신이 정말 하고싶은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와 같은 성향의 사람인 척 가장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인 분중에 한 여성분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 주위에는 나와 같이 미친 사람 즉 유독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분은 오히려 본인도 그렇게 무엇인가를 파고들며 열정있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을 보면서 열정된 삶만을 쫓는 것도 어떤 이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자기 자신이 어디에 맞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Ikigai(내가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생이 무상하다 해서 허무주의가 아니고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꿈이 없는 잠을 한번 생각해보자 . 밤에 잠이 들어서 꿈을 꾸지 않고 깨지 않고 영원히 자버린다면? 그것이 죽음이 아닌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야지만 의식이 돌아오고 내가 잠에서 깨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즉 잠에서 눈을 떠야지만 내 인생,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저녁에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잠자는 것은 죽는 것 즉 무의식으로 가는 것,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의식이 생기고 살아나는 것이고 그러니 나에겐 하루하루가 죽고 살아나고,살아나고 죽는 윤회다. 난 하루하루 삶과 죽음이 매일 반복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새로운 삶을 후회없이 살려고 노력하게 되고 이렇게 매일 반복되는 새로운 삶이 나에게는 자극이 된다. 하루하루의 챗바퀴같은 일상이 결국 나에게는 열정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Total Movement Solution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인간의 움직임과 관련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가지 것들을 배우고 수련하면서 인간이 몸을 쓰는 것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수련을 통해 이렇게 직관적으로 느낀 것들을 이후 재활치료를 공부하면서 결국 학술적으로도 이 모든 것들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결론은 움직임(movement)이었다. 무술, 트레이닝, 재활도 움직임이고 무용도 춤도 움직임이다. 모든 것들이 다 움직임이다. 그런데 그 움직임을 사람들이 이건 무술이다 저건 필라테스다 그리고 이건 재활운동이다, 근력운동이다 등으로 이렇게 구분을 지은 것일 뿐 결국은 모두 움직임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시간(time)을 한번 생각해보자. 시간이라는 건 원래 어떤 형체를 가진 것도 아니고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년,월,일,주,시,분,초 등으로 나눈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를 필요에 의해 이렇게 나눌 수도 있다면 반대로 통합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브먼트의 통합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움직임안에서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말이다.

이런 통합과정에 있어 나는 동서양의 이론과 방법까지 모두 통합한 무브먼트 솔루션을 만들고 싶다. 동양적인 것들은 형이상학적이고 서양은 인체를 바이오메카닉적(기계적)으로 분석하여 해결책을 추구한다. 내가 느낀 것은 이 모든 것들에는 각자 논리와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것들도 모두 움직임으로 집결된다. 어떤 기준으로 나누었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인종을 나눌 때 보통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가? 피부색깔이다. 문화인류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인데 인종구분의 기준을 유당을 소화시킬 수 있는 효소인 Lactose가 있냐 없냐를 기준으로 하면 동유럽과 아시아가 하나의 분류로 묶인다.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분류된다는 말이다.
동양의 체계는 동양 나름의 분류기준이 있다. 내가 공부해보니 굉장히 정교했고 상당히 실증적이다. 서구의 체계는 굉장히 분석적이면서도 체계적이었다. 나는 최종적으로 동서양의 특징과 체계들이 모두 어우러진 Mind와 Body 즉 정신(감정)과 육체를 아우르는 피트니스를 추구한다.

예전에 이런 경험이 있다. 대학교 시절 강단에서 발표를 하는데 교수님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갑자기 하셨다. 그때 쩔쩔매며 너무 당황하고 긴장했었고 그렇게 발표를 겨우 마치고 강단을 내려오려는데 한쪽 다리가 완전히 마비되어 질질 끌면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마음,감정,스트레스가 내 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렇듯이 인간의 마음과 몸을 따로 떼어 판단할 수 없다. 서구는 이 부분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런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감정(마음)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다면 그런 감정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형이상학적인 감정이나 스트레스 등을 어떻게 컨트롤 할 것인가?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을 movement 즉 움직임을 통해 어떻게 감정까지 함께 치유,통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Mind와 Body가 함께 어우러진 무브먼트 솔루션을 원한다.

내가 죽은 후 다른 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크게 기억되지 않는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명성이 높고 업적이 높을수록 후대에 그사람은 신성시되고 교조주의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Simo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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